夫孝經者는 孔子之所述作也라 述作之旨者는 昔聖人蘊大聖德이나 生不偶時하야 適値周室衰微하야 王綱失墜하야 君臣僭亂하고 禮樂崩頹하야 居上位者는 賞罰不行하고 居下位者는 褒貶無作하니 孔子遂乃定禮樂하고 刪詩書하고 讚易道하야 以明道德仁義之源하고 修春秋하야 以正君臣父子之法하며 又慮雖知其法이라도 未知其行하야 遂說孝經一十八章하야 以明君臣父子之行하니 所寄는 知其法者修其行하고 知其行者謹其法이라
→ 효경은 공자가 지으신 것이다. 지으신 취지는 옛 성인들이 큰 성덕을 쌓았으나 태어난 때가 좋지 않아 주 왕실이 쇠락하고 왕의 권위가 실추되어 임금과 신하의 위계질서가 어지러워지고 예악이 붕괴되어 위에 있는 사람은 상벌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고 아래 있는 사람은 옭고 그름을 가리지 않으니 공자께서 결국 예악을 정돈하고 시(詩), 서(書)를 정하고 역(易)의 원리를 부연하여 도덕(道德)과 인의(仁義)의 근원을 밝히고 춘추를 다듬어 이로써 군신부자의 법도를 바르게 하기 위함이요. 또한 비록 그 법도를 알지라고 아직 그 실행을 알지 못함을 염력하여 효경 18장을 말씀하시고 전하여 군신부자의 행실을 밝히시니 소위 (이로써) 바라는 바 법도를 아는 사람은 그 행실을 수양하고 그 행실을 아는 사람은 그 법도를 삼가는 것이다.
故孝經緯曰 孔子云 欲觀我褒貶諸侯之志인댄 在春秋하고 崇人倫之行인댄 在孝經하라하니 是知孝經雖居六籍之外나 乃與春秋爲表矣라 先儒或云 夫子爲曾參所說이라하나 此未盡其指歸也라 蓋曾子在七十弟子中에 孝行最著일새 孔子乃假立曾子하야 爲請益問答之人하야 以廣明孝道하고 旣說之後에 乃屬與曾子니라
→ 이에 [효경위]에 말하길 " 공자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제후를 포폄한 의미를 보고자 하면 춘추를 살펴보고 사람의 도리를 받든 행실은 효경을 살펴보라" 하였으니 이에 효경이 비록 육서 밖에 있으나 춘추와 더불어 표리가 됨을 알 수 있다. 선배 유학자 중 간혹 말하길 " 공자께서 증삼을 위하여 이를 말씀하셨다" 하나 이는 (효경 저술의) 그 취지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 대략 증자가 공자의 70여 제자들 중에 효행이 가장 두드러지니 공자께서 증자를 더 유익한 문답을 청하는 사람으로 가정하사 효도를 널리 밝히시고 다 말씀하신 후 증자에게 맡긴 것이다.
洎遭暴秦焚書하야 竝爲煨燼이러니 漢膺天命하야 復闡微言이라 孝經은 河間顔芝所藏이 因始傳之于世하야 自西漢及魏하고 歷晉宋齊梁하야 注解之者가 迨及百家니라 至有唐之初하야 雖備存祕府나 而簡編多有殘缺하야 傳行者는 唯孔安國鄭康成兩家之注요 幷有梁博士皇侃義疏하야 播於國序하니라 然辭多紕繆하고 理昧精研이라
→ 포안한 진(나라, 시황제)의 분서(분서갱유)를 만나 (경전) 모두 잿더미가 되었으나 한(漢) 나라가 천명을 받아 다시 심미한 말들을 드러내었다. 효경은 하간 안지가 소위 감추어 보관하던 것이 세상에 전해저 서한에서 위(나라)에 이르고 진, 송, 제, 량(나라)을 지나 주석을 달고 해석한 이가 100家에 이른다. 당(나라) 초에 이르러 비록 황실 도서관에 보존되었으나 간단한 엮임이 많고 일그러져 남겨져, 전해진 것은 오직 공안국과 정강성 양가의 해석 본 뿐이요 아울러 양박사 황간의 (효경)의소가 있어 태학에 전해졌으나 글에 오류가 많고 이치가 정확히 세세하게 연구되지 않았다.
至唐玄宗朝하야 乃詔群儒學官하야 俾其集議하니 是以劉子玄辨鄭注有十謬七惑하고 司馬(堅)[貞]斥孔注多鄙俚不經하니라 其餘諸家注解는 皆榮華其言하고 妄生穿鑿이라 明皇遂於先儒注中에 採摭菁英하고 芟去煩亂하야 撮其義理允當者하야 用爲注解하니라 至天寶二年하야 注成하니 頒行天下하고 仍自八分御(扎)[札]하야 勒于石碑하니 卽今京兆石臺孝經이 是也라
→ 당 현종조에 이르러 유학자들과 관련 관리들을 불러 그 뜻을 모으도록 하니 유자현은 정현의 주(注)에 10개의 오류와 7개의 의혹이 있음을 밝히고 사마정은 공안국의 주에 저속하고 올바르지 않으며 그밖에 여러 학자들의 해석이 그 말은 화려하되 함부로 갖다 부친 것이 많았다. 이에 명황이 드디어 선배 유학자들의 해석 중 정화만을 골라내고 번거롭고 어지러운 것들을 베어 내여 그 의리가 타당한 것을 모아 주해를 달았다. 천보 2년에 이르러 주(注)가 완성되어 세상에 반포하고 이어 팔분체로 친히 필사하이서 비석에 새겼으니 바로 경도(장안, 지금의 서안)에 있는 석대효경이 이것이다.
* 疏 트일 소
☞ 글에 1차 주석(해석)에 이어 2차 주석(해석)을 붙이는 것을 소(疏)라 한다
* 蘊 쌓을 온
* 僭 주제넘을 참
* 頹 무너질 퇴, 턱 퇴
* 墜 떨어질 추
* 褒 기릴 포
* 貶 낮출 폄
* 刪 깍을 산
* 洎 물 부을 계, 게, 기
* 煨 묻은 불 외, 불씨 외
* 燼 깜부기 불 신 ※ 깜부기 : 타다가 남은 불
* 闡 밝힐 천, 열 천
* 迨 미칠 태, 이를 태
* 紕 가선 비, 잘못할 비
* 繆 얽을 무
* 俾 더할 비
* 鄙 더러울 비
* 俚 속될 리
* 鑿 뚫을 착
* 摭 주울 척
* 菁 우거질 청
* 芟 벨 삼
* 撮 모을 촬
* 頒 나불 반
* 勒 굴레 륵
* 褒貶 칭찬함과 나무람, 옭고 그름을 평하여 정리함
* 六籍 시(詩) 서(書) 역(易) 예(禮) 악(樂) 춘추(春秋)
* 夫子 공자
* 洎遭 ~와 만나다(與遭)
* 河間 지역 이름
* 祕府 황실 도서관
* 國序 나라의 대학 = 태학(太學)
* 鄙俚 풍속이나 말이 속되고 촌스럽다.
* 八分(체) 예서 2분과 전서 6분을 섞어 장식적인 효과를 낸 서체. 한대 채옹이 만들었다
※ 효경주소서(孝經注疏序)
☞ 당나라 현종이 주석을 달고 송나라 형병이 다시 2차 해석을 달은 [효경정의]의 서문
※ 증자(曾子)
☞ 중국 전국시대의 유학자로 동양의 효자를 대표하는 인물, 공자의 제자, 이름은 삼(參)
※ 공안국(孔安國)
☞ 전한 초기의 학자로 자(字)는 자국(子國)이고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11대손이다.
※ 정강성(鄭康成)
☞ 중국 후한 말의 학자 '강성'은 그의 자(字)이고 이름은 현(玄)이다. 금고문학에 능하였다.
※ 현종(玄宗)
☞ 당나라 6대 황제, '계원의 치'라 불릴 만큼 정사에 뛰어난 왕이었으나 말년에 양귀비에 빠져 당나라의 흥과 망에 모두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 유자현(劉子玄)
☞ 당나라의 역사가 형인 유지유와 함께 서(書)으로 유명하였다.
※ 사마정(司馬貞)
☞ 당나라이 사학자 현종 때 조산대부 및 소문관 학사을 맡았다.